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거 실제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부자들》을 처음 봤을 때 제가 딱 그랬습니다. 정치인, 재벌, 언론이 서로 손을 잡고 권력을 나눠 갖는 구조가 너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단순한 범죄 오락 영화로 보기엔 남겨진 질문이 너무 많았습니다. 권력 카르텔, 영화가 보여준 배경과 맥락《내부자들》은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우민호 감독이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입니다. 원작 웹툰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가 제작됐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감독은 이 미완의 이야기에서 권력의 작동 방식이라는 핵심만 뽑아내 자신만의 문법으로 재구성했습니다.영화가 그리는 권력 구조는 단순하지..
넷플릭스 공개 직후 IMDb 6.0점, Rotten Tomatoes 평론가 지수 67%를 기록한 영화 《황야》. 처음 이 수치를 보고 "그냥 무난한 액션 영화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숫자를 뛰어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줄거리부터 등장인물,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총평까지 솔직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황야 줄거리 — 대지진 이후 서울, 어디서부터 시작되나영화는 대규모 지진으로 도시 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근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란, 문명이 무너진 뒤 살아남은 자들이 새로운 생존 질서를 만들어가는 세계관을 뜻합니다. 《황야》는 그 세계관을 한국의 폐허 도시 위에 올려놓은 작품입니다.주인공 남산은 ..
가난한 사람이 진짜 '기생충'일까요?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그 생각이 뒤집혔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2019년 내놓은 이 작품은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모두 거머쥔 영화입니다. 웃다가 얼어붙고, 얼어붙다가 먹먹해지는 이 영화를 저는 두 번 봤는데,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훨씬 더 불편하고 더 깊었습니다. 줄거리 — 웃음에서 비극으로 가는 설계《기생충》의 서사 구조는 블랙코미디(Black Comedy)로 시작해서 사회 스릴러로 전환됩니다. 여기서 블랙코미디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그 웃음 뒤에 불편한 현실 비판을 숨겨 놓는 장르를 말합니다. 제가 처음 전반부를 볼 때는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에 하나씩 잠입하는..
영화 《고백의 역사》, IMDb 이용자 평점 7.1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또 첫사랑 영화겠지' 하고 가볍게 틀었는데, 보고 나서 한참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1998년 부산이라는 배경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걸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줄거리 — 고백보다 자기 자신을 찾는 이야기영화의 무대는 1998년 부산입니다. 주인공 박세리(신은수)는 열아홉 살 고등학생으로, 밝고 씩씩한 성격을 가졌지만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바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곱슬머리입니다. 세리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 김현(차우민)에게 고백하기 위해 드라이기를 동원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머리를 펴려고 애씁니다.그러다 서울에서 전학 온 한윤석(공명)과 우연히 얽히게 됩니다. 윤석의 어머니가 미용실을 운영한다는..
검사가 되면 정의로운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영화 《더 킹》의 박태수는 처음부터 정의 따위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를 더 불편하고,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였습니다. 2017년 개봉 당시 531만 관객을 동원한 한재림 감독의 작품인데, 제가 최근 다시 꺼내 본 뒤로 며칠째 머릿속에서 잘 안 지워집니다. 권력욕망 — 박태수는 왜 나쁜 놈이 되었나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박태수(조인성)가 언제 타락하는지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타락의 시작점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권력 그 자체를 원했고, 검사라는 직함은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이 지점이 제가 처음 봤을 때와 다시 봤을 때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영화는 태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개봉 당시에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백두산》이 같은 시기에 걸려 있었고, 주변에서도 액션 사극 쪽으로 몰렸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집에서 혼자 틀었다가 두 시간 내내 자리를 못 떴습니다. 세종과 장영실이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역사 재현이 아니라 "이 두 사람은 진짜 서로가 필요했겠구나" 하는 감각이었습니다. 세종과 장영실, 그 관계의 역사적 배경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먼저 시대적 맥락을 짚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영화를 보고 나서 관련 역사 자료를 꽤 찾아봤는데, 알고 나니 장면마다 다르게 읽혔습니다.세종이 왕위에 있던 15세기 전반, 조선은 천문과 역법 분야에서 중국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역법이란 해..
주말 오후에 아무 생각 없이 틀었다가 생각보다 오래 보게 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박수건달》이 딱 그런 영화였습니다. '건달이 무당이 된다'는 한 줄짜리 설정만 보고 반신반의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박신양의 표정 연기 하나하나에 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습니다. 389만 관객이 동원됐다는 수치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흥행 성적과 등장인물 — 숫자 뒤에 있는 얼굴들《박수건달》은 2013년 1월 9일 개봉해 약 38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분기 전체 흥행 순위 4위에 오른 작품으로, 《7번방의 선물》, 《베를린》, 《신세계》와 함께 그 시기 한국영화 흥행을 이끈 타이틀 중 하나였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일반적으로 조폭..
솔직히 처음 이 영화 소개를 봤을 때 "이게 되겠어?" 싶었습니다. 전남편과 현남편이 한 팀이 된다는 설정, 너무 작위적이지 않냐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절반만 맞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2026년 6월 19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남편들》, 설정의 신선함과 완성도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영화입니다.전남편 × 현남편, 이 설정이 왜 눈에 띄었나《남편들》의 장르는 코미디 액션(Comedy Action)입니다. 코미디 액션이란 웃음과 신체적 긴장감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장르로, 단순히 재밌거나 단순히 스릴 있는 게 아니라 두 가지를 같은 장면 안에서 소화해야 하는 까다로운 형식입니다. 그래서 이 장르가 성공하려면 캐릭터 조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남편들》이 꺼내 든 조합은 전남편 황충식(..
최종 관객 수 96,146명. 솔직히 이 숫자를 보고 제가 먼저 든 생각은 "그래도 봐볼 만한 영화였는데"였습니다. 2023년 10월 개봉한 《화사한 그녀》는 엄정화가 주연을 맡은 범죄 코미디 영화로, 600억 원짜리 한탕 작전을 소재로 합니다. 흥행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제가 직접 관람해보니 엄정화와 송새벽의 케미만큼은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줄거리 — 600억짜리 작전, 왜 이렇게 허술한 걸까요?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는 장르를 아시나요? 여기서 케이퍼 무비란 도둑이나 사기꾼이 특정 목표물을 훔치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펼치는 범죄 오락 영화를 가리킵니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도둑들》이 대표적인 예죠. 《화사한 그녀》도 이 장르를 표방하고 있습니다.주인공 지혜(엄정화)는 매번 ..
경찰이 조폭이 되고, 조폭이 경찰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유감스러운 도시》(2009)는 바로 이 단순한 질문 하나에서 출발합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기대치가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이게 생각보다 잘 짜여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준호·정웅인·정운택, 이른바 '정트리오'의 재결합이라는 화제성만 믿고 봤다가 예상 밖의 구조적 재미를 발견한 경험,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잠입수사 설정, 식상하다고요? 이 영화는 조금 다릅니다잠입수사물(undercover thriller)이라는 장르를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대개는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 정체가 탄로 날 위기, 그리고 묵직한 결말이 연상됩니다. 여기서 잠입수사물이란, 수사관이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