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개봉한 《우아한 세계》는 조직폭력배 중간 보스가 주인공인 느와르 영화임에도 흥행 성적보다 "40대 가장의 애환을 담은 작품"으로 더 오래 회자됩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비웃었습니다. 조폭 영화에 '우아'라는 단어가 붙다니, 제목만으로도 역설이 완성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2000년대 한국의 사회적 배경과 이 영화가 태어난 맥락《우아한 세계》가 만들어진 2000년대 중반은 이른바 '가장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여기서 가장 이데올로기란, 남성 가장이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책임지는 것이 곧 사랑의 증명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말합니다. 좋은 집, 안정적인 수입, 자녀 교육—이 세 가지를 갖추면 좋은 아버지라는 등식이 암묵적으로 통용됐습니다.강인구라는 캐릭터는 ..
주식으로 손해를 봤다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이 작전에 당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작전》을 보기 전까지는, 주가가 오를 때 따라 샀던 제 선택이 누군가의 계획 안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영화가 불편했던 이유는 스크린 속 인물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 제 것과 너무 닮아 있어서였습니다. 주가조작의 구조 — 숫자가 아니라 심리를 움직인다일반적으로 주가조작이라 하면 해킹이나 내부자 거래처럼 기술적이고 복잡한 범죄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영화 《작전》을 보고 나서 제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실제 작전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심리를 설계하는 것이었습니다.영화 속 작전 세력은 시세조종(市勢操縱)이라는 ..
《춘향전》은 알아도 방자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2010년 개봉한 영화 《방자전》을 보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한쪽 시선으로만 이 고전을 읽어왔는지 실감했습니다.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신분과 욕망, 그리고 사람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줄거리: 방자 시점으로 본 춘향전영화 《방자전》은 2010년 6월 2일 개봉한 사극·멜로 장르 작품입니다. 감독 김대우, 출연 김주혁(방자), 류승범(이몽룡), 조여정(춘향), 류현경, 송새벽. 상영 시간은 124분이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입니다.원작인 고전 소설 《춘향전》에서 방자는 이몽룡의 심부름꾼, 조력자 정도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바로 그 방자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웁니다.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시..
영화 《간신》은 2015년 개봉 당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고 강한 표현으로 호불호가 갈렸던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단순히 연산군의 폭정을 다룬 사극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왕 옆에서 그 욕망을 이용해 권력을 키워가는 임숭재라는 인물이 어쩌면 왕보다 더 무서웠거든요. 줄거리와 임숭재라는 인물영화의 배경은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의 재위 11년입니다. 연산군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전국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궁에 데려오라는 명을 내리고, 이 역할을 맡은 직책이 채홍사(採紅使)입니다. 여기서 채홍사란 왕의 명으로 전국 각지에서 여성들을 선발해 궁으로 불러들이는 임무를 맡은 관직을 뜻합니다. 그 채홍사로 임명된 인물이 바로 주지훈이 연기한 임숭재입니다.저는 처음에 임숭재가 그냥 왕의 명을 따르는 신..
왕이 직접 사건 현장을 누빈다는 설정, 처음엔 그냥 웃기려고 만든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다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나는 평소에 얼마나 제대로 확인하고 판단하는 걸까"였습니다. 웃으면서 보다가 끝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된 영화, 저는 그런 작품을 오래 기억합니다. 조선시대 왕의 정보 환경,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까《임금님의 사건수첩》을 보기 전에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조선시대 임금은 대체 어떤 경로로 나라 안의 일을 파악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실시간 검색 하나로 전국 소식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는 달랐으니까요.조선은 사관(史官) 제도를 두어 왕의 언행과 주요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사관이란 역사적 사실을 공식 문서로 남기는 전담 ..
1728년 조선 영조 4년, 실제로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역모: 반란의 시대》는 러닝타임 102분짜리 사극 액션입니다. 역사 영화라면 정치 갈등과 인물 서사가 깊을 거라 기대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예상과 꽤 달랐습니다. 그 차이를 솔직하게 기록해두려 합니다. 줄거리 — 역사적 사건보다 '그날 밤'에 집중한 영화영화의 출발점은 실제 역사입니다. 1728년, 소론 세력을 중심으로 영조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의 난(戊申亂)이 그 배경입니다. 이인좌의 난이란 영조의 즉위 정통성에 반발한 세력이 청주성을 점령하고 한양으로 진격하려 했던 실제 반란 사건으로, 조선 중기 왕권을 뒤흔든 굵직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영화는 이 사건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이인좌가 처형되기 직전 밤, 궁궐에서 ..
서울 강남을 지나다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높은 아파트, 정비된 도로, 즐비한 상업시설. 저는 그게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남 1970》을 보고 나서 그 무심함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개발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 어떤 사람들의 욕망과 선택이 쌓여 있었는지를, 이 영화가 꽤 날카롭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배경 — 개발이 시작되던 강남, 그리고 그 땅의 의미《강남 1970》의 배경은 1970년대 서울입니다. 지금의 강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강남 지역은 도시계획에 의해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던 시기였고, 서울의 급격한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행정 당국이 강북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을 밀어붙이던 때였습..
솔직히 저는 《반창꼬》를 보기 전까지 제목을 오타라고 생각했습니다. '반창고'가 맞는 표현인데 왜 '꼬'로 끝나는 걸까 싶었거든요. 그냥 가볍게 웃고 끝나는 로맨스 영화일 거라 예상했는데, 다 보고 나서는 그 오타처럼 보이던 제목이 영화 전체를 꿰뚫는 가장 정확한 단어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소방관과 의사,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줄거리: 구조 현장보다 마음이 더 위험했다2012년 12월에 개봉한 《반창꼬》는 고수, 한효주 주연의 멜로 드라마입니다. 러닝타임 120분, 15세 관람가. 감독은 정기훈입니다.줄거리의 출발점은 꽤 현실적입니다. 외과의사 미수는 의료사고(medical malpractice)와 얽힌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방관 강일의 증언이 필요해집니다..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2010년 개봉한 장진 감독의 《퀴즈왕》을 다시 꺼내 봤습니다. 133억 원이라는 숫자보다 영화가 끝나고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전혀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강변북로 교통사고에서 시작된 이야기요즘 들어 저는 긴장감이 팽팽한 영화보다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을 더 찾게 됩니다. 그러다 장진 감독의 《퀴즈왕》을 다시 꺼내 봤습니다. 처음 선택한 이유는 솔직히 단순했습니다. 133억 원짜리 퀴즈쇼라는 설정이 가볍게 보기에 딱 좋아 보였거든요.영화는 강변북로에서 벌어진 4중 추돌사고로 시작합니다.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던 사람들이 하나의 사고로 묶여 경찰서로 향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방송 이후 단 한 번도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한 퀴즈쇼..
범인이 이미 잡혔는데, 그게 진짜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 《끝장수사》는 바로 그 질문 하나로 97분을 꽉 채웁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는 그냥 가볍게 볼 수 있는 형사물이겠거니 했는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종결된 살인사건에 왜 다시 손을 댔나 — 영화의 설정과 구조《끝장수사》는 박철환 감독이 연출하고 배성우, 정가람, 이솜, 윤경호가 출연한 범죄·액션 코미디 영화입니다. 2019년에 촬영을 마쳤지만 여러 사정으로 개봉이 약 7년 미뤄져 2026년 4월 2일에야 관객과 만났습니다. 상영시간 97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로, 처음에는 《출장수사》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가 개봉 전 현재의 제목으로 변경됐습니다.영화의 뼈대는 '버디 무비(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