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엔 그냥 이병헌·최민식 두 배우가 붙는다는 이유만으로 틀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한참 동안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통쾌함이 아니라 묘한 공허함이 먼저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악마를 보았다》는 복수의 시원함을 기대한 제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 영화였습니다. 줄거리 — 복수극인 줄 알았는데, 심리극이었다2010년 8월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국가정보원 요원 김수현이 약혼녀 장주연을 잃으면서 시작됩니다. 범인은 연쇄살인마 장경철. 수현은 그를 찾아내지만, 한 번에 끝내지 않습니다.여기서 영화의 핵심 설정이 드러납니다. 수현은 장경철을 죽이는 대신 고통을 맛보게 한 뒤 놓아주고, 또 찾아와 다시 고통을 가하는 방식을 반복합니다. 이른바 '고양이와 쥐' 구도, 즉 포..
솔직히 저는 《교섭》을 처음 봤을 때 황정민과 현빈이 나오니까 당연히 총격전이나 추격 장면이 가득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전혀 달랐습니다. 말 한마디가 총 한 발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줄거리 — 총보다 말이 먼저였던 108분영화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탈레반에 납치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이 오프닝을 보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사건 한복판으로 던져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명 없이 상황부터 들이미는 방식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실제 사건처럼 느껴졌습니다.이후 교섭 전문 외교관 정재호(황정민)가 현지로 투입됩니다. 여기서 교섭 전문 외교관이란 단순히..
2017년 개봉 당시 《보통사람》은 손현주·장혁 두 배우만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저는 그 배우들보다 1987년이라는 시대 설정에 먼저 끌렸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절정으로 치닫던 그해, 평범한 형사 한 명의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제목이 왜 '보통사람'인지 이해했습니다. 시대적 배경 — 1987년이라는 무게영화의 배경은 1987년 대한민국입니다. 이 해는 단순한 연도가 아닙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민주항쟁이 터져 나온 해로, 국가 공권력과 개인의 삶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했던 시기입니다. 여기서 국가 공권력이란 국가가 법적 권한을 내세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통제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 힘이 얼마나 일상 깊숙..
2006년 개봉한 《해바라기》는 국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른 작품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액션 조폭 영화"로만 기억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가장 오래 남은 건 주먹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오태식이 수첩에 적어둔 세 줄짜리 약속이었습니다. 시대적 배경 — 2000년대 한국, 힘의 논리가 먼저였던 사회일반적으로 《해바라기》는 개인의 갱생 드라마로 분류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성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작품입니다.영화 속 공간은 조직폭력배와 유흥업소가 지역 경제를 장악하고, 법보다 위계와 주먹이 먼저 통하는 세계입니다. 이 구조는 당시 실제로 국내 여러 지방 도시에서 적발된 조직범죄 실태와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
2015년 3월 개봉한 영화 《헬머니》는 '욕'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입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그냥 자극적인 웃음만 파는 영화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거친 말 뒤에 이렇게 많은 것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줄거리 — 욕 배틀 오디션 뒤에 숨겨진 가족 이야기영화의 중심에는 교도소 생활까지 경험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할머니 이정순, 일명 헬머니(김수미)가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욕을 끊고 조용히 살아가려 하지만, 주변 상황이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헬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 승현(정만식)은 직장 상사에게 치이며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둘째 주현(김정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기댑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두 ..
영화 《1987》을 처음 본 건 개봉하고 꽤 지난 뒤였습니다. '역사 영화'라는 말에 어딘가 무겁고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1987년이라는 숫자가 단순한 연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두려움과 용기가 켜켜이 쌓인 시간이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줄거리와 등장인물 — 영웅 없이 완성된 이야기영화 《1987》은 장준환 감독이 연출했으며 2017년 12월 27일 개봉했습니다.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한 사건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당국은 사망 원인을 축소하고 진실을 덮으려 했지만, 부검 결과와 여러 사람들의 증언이 맞물리면서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세상 밖으로 흘러나옵니다.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도둑들》은 2012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수 1,298만 명을 기록하며 그해 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처음 이 수치를 확인했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135분짜리 범죄 영화가 그 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데는 분명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케이퍼 무비 장르로 보는 《도둑들》의 구조《도둑들》은 전형적인 케이퍼 무비(Caper Movie) 형식을 따릅니다. 케이퍼 무비란 정교하게 짜인 범죄 계획과 그 실행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르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보석이나 금고를 터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스펙터클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가 이 장르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도둑들》은 그 한국판 ..
얼음을 훔치는 영화라는 말을 듣고 솔직히 처음엔 '그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고른 것도 사실 제목 때문이었는데, 막상 알고 보니 사랑 이야기는 한 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영화였습니다. 조선판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 자체를 처음 제대로 경험한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조선 케이퍼 무비, 얼음이 권력이 되는 세계여기서 케이퍼 무비(Caper Movie)란 절도나 사기를 중심으로 작전을 짜고 실행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장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도둑 영화'인데,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각자 전문 기술을 가진 팀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구조가 핵심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 구조를 조선시대에 그대로 가져다 놓은 영화입..
도박 영화는 결국 "누가 더 잘 속이느냐"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타짜》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웠던 건 상대방의 패가 아니라, 한 번만 더 이기고 싶다는 고니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화투판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영화가 실제로 건드리는 것은 욕망과 배신, 그리고 사람을 읽는 심리전입니다. 욕망 심리 — 도박판이 보여주는 인간의 민낯《타짜》를 처음 볼 때 저는 단순히 화투 기술 대결을 보게 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영화 초반은 그런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줍니다. 하지만 고니(조승우)가 평경장(백윤식)에게 타짜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게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여기서 타짜란 단순히 화투를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한국 범죄 영화를 그냥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장르물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좁은 시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1982년 부산에서 시작해 1990년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는, 조폭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욕망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1980~90년대 부산, 이 시대를 알아야 영화가 보인다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당황했던 부분은 배경이었습니다. 1982년 부산, 세관 공무원이 히로뽕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설정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적 배경을 조금만 이해하고 나면 영화 전체가 다르게 읽힙니다.198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