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엔 그냥 이병헌·최민식 두 배우가 붙는다는 이유만으로 틀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한참 동안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통쾌함이 아니라 묘한 공허함이 먼저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악마를 보았다》는 복수의 시원함을 기대한 제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 영화였습니다. 줄거리 — 복수극인 줄 알았는데, 심리극이었다2010년 8월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국가정보원 요원 김수현이 약혼녀 장주연을 잃으면서 시작됩니다. 범인은 연쇄살인마 장경철. 수현은 그를 찾아내지만, 한 번에 끝내지 않습니다.여기서 영화의 핵심 설정이 드러납니다. 수현은 장경철을 죽이는 대신 고통을 맛보게 한 뒤 놓아주고, 또 찾아와 다시 고통을 가하는 방식을 반복합니다. 이른바 '고양이와 쥐' 구도, 즉 포..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한국 범죄 영화를 그냥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장르물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좁은 시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1982년 부산에서 시작해 1990년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는, 조폭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욕망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1980~90년대 부산, 이 시대를 알아야 영화가 보인다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당황했던 부분은 배경이었습니다. 1982년 부산, 세관 공무원이 히로뽕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설정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적 배경을 조금만 이해하고 나면 영화 전체가 다르게 읽힙니다.1980년대..
솔직히 말하면, 영화관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파묘》를 단순한 귀신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 넘게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극장을 나온 뒤에도 한참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풍수사, 무속인, 장의사, 법사가 한 무덤을 파내면서 마주한 것이 단순한 원혼이 아니라 오랫동안 묻혀 있던 역사의 상처였다는 점, 그게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 이유입니다. 줄거리 —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꺼내는 이야기영화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 부유한 가족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기이한 현상이 반복되면서 시작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부터 가족 구성원 전체에 걸쳐 이상 징후가 이어지는데, 단순한 질환이나 우연으로 보기에는 패턴이 너무 뚜렷합니다.결국 가족은 풍수사 상덕, 장의사 영근, 무속인 화림, 법..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개봉 당시에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백두산》이 같은 시기에 걸려 있었고, 주변에서도 액션 사극 쪽으로 몰렸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집에서 혼자 틀었다가 두 시간 내내 자리를 못 떴습니다. 세종과 장영실이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역사 재현이 아니라 "이 두 사람은 진짜 서로가 필요했겠구나" 하는 감각이었습니다. 세종과 장영실, 그 관계의 역사적 배경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먼저 시대적 맥락을 짚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영화를 보고 나서 관련 역사 자료를 꽤 찾아봤는데, 알고 나니 장면마다 다르게 읽혔습니다.세종이 왕위에 있던 15세기 전반, 조선은 천문과 역법 분야에서 중국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역법이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