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개봉한 영화 《무사》는 중국 대륙 1만km를 실제로 횡단하며 촬영한 작품입니다. 처음 다시 틀었을 때는 그냥 오래된 액션 영화려니 했는데, 한 장면 한 장면 넘어갈수록 멈추기가 어려웠습니다. 살아남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지키려 하는지를 묻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줄거리 — 사막에 버려진 고려 무사들의 귀환기영화의 배경은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권력이 교체되던 14세기 후반입니다. 여기서 '원명 교체기'란 몽골 제국이 쇠퇴하고 한족 왕조인 명나라가 중원을 장악해가던 시기로, 동아시아 전체의 외교 질서가 뒤흔들리던 때를 말합니다. 고려에서 파견된 사신단이 이 혼란 속에서 간첩 혐의를 받고 유배길에 오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저는 이 도입부를 보면서 당시 외교가 얼마나 불안정한 도박..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영화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반신반의하며 《서울의 봄》을 틀었고, 141분이 끝날 무렵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밤, 서울에서 벌어진 9시간의 군사반란을 다룬 이 영화는 역사 기록물이 아니라 숨이 막히는 긴장극이었습니다. 그날 밤 서울은 왜 그렇게 위태로웠을까 — 시대적 배경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12·12 군사반란이라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교과서에서 한두 줄로 지나쳤던 사건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그 맥락이 얼마나 복잡하고 긴박했는지를 실감했습니다.출발점은 1979년 10월 26일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18년 가까이 이어진 유신 체제, 즉 헌법..
검사가 되면 정의로운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영화 《더 킹》의 박태수는 처음부터 정의 따위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를 더 불편하고,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였습니다. 2017년 개봉 당시 531만 관객을 동원한 한재림 감독의 작품인데, 제가 최근 다시 꺼내 본 뒤로 며칠째 머릿속에서 잘 안 지워집니다. 권력욕망 — 박태수는 왜 나쁜 놈이 되었나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박태수(조인성)가 언제 타락하는지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타락의 시작점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권력 그 자체를 원했고, 검사라는 직함은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이 지점이 제가 처음 봤을 때와 다시 봤을 때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영화는 태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