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남미를 배경으로 한 통쾌한 성공담 정도를 기대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콜롬비아로 건너간 청년이 낯선 땅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범죄 드라마입니다. 기회를 잡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저의 시각이, 107분이 지난 뒤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만든 이민의 풍경제가 이 영화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배경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외환위기란 국가가 외채를 갚을 외화가 부족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사건으로, 당시 수많은 가정이 하루아침에 삶의..
나쁜 사람은 처음부터 나쁜 사람으로 태어날까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혀 있었던 질문입니다. 2000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당시 제작비 약 6,500만 원. 수치만 보면 초라하지만, 막상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그 거친 질감이 오히려 이야기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택의 결과 — 싸움 하나가 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영화는 네 편의 단편이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는 옴니버스 구조(Omnibus Structure)를 취합니다. 여기서 옴니버스 구조란 독립된 이야기들이 공통된 인물이나 주제로 연결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단순히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앞 이야기의 결말이 다음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 형식이죠. 제가 처음 이 ..
검사가 되면 정의로운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영화 《더 킹》의 박태수는 처음부터 정의 따위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를 더 불편하고,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였습니다. 2017년 개봉 당시 531만 관객을 동원한 한재림 감독의 작품인데, 제가 최근 다시 꺼내 본 뒤로 며칠째 머릿속에서 잘 안 지워집니다. 권력욕망 — 박태수는 왜 나쁜 놈이 되었나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박태수(조인성)가 언제 타락하는지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타락의 시작점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권력 그 자체를 원했고, 검사라는 직함은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이 지점이 제가 처음 봤을 때와 다시 봤을 때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영화는 태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