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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은 처음부터 나쁜 사람으로 태어날까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혀 있었던 질문입니다. 2000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당시 제작비 약 6,500만 원. 수치만 보면 초라하지만, 막상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그 거친 질감이 오히려 이야기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택의 결과 — 싸움 하나가 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영화는 네 편의 단편이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는 옴니버스 구조(Omnibus Structure)를 취합니다. 여기서 옴니버스 구조란 독립된 이야기들이 공통된 인물이나 주제로 연결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단순히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앞 이야기의 결말이 다음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 형식이죠. 제가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는 단편집처럼 느슨하게 이어지는 구조일 거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훨씬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패싸움〉에서 시작은 아주 작습니다. 당구장에서 시작된 신경전. 학교 자존심 싸움. 그런데 여기서 성빈이 순간적으로 맥주병을 휘두르고, 상대방이 목숨을 잃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특별히 사악한 인물도, 치밀한 계획도 없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등줄기가 서늘했던 이유는 바로 그 평범함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나 화가 나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 손이 먼저 나가는 상황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거든요.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성빈은 감옥에 가고, 출소 후 카센터에서 일하며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이 만든 심리적 외상(Trauma), 쉽게 말해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상처가 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악몽을 꾸고, 연락을 끊은 석환을 그리워하고, 결국 우연히 만난 건달 태훈을 도우면서 다시 폭력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반면 석환은 경찰이 됩니다. 이 대비가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지만, 곱씹을수록 복잡했습니다. 다혈질이었던 석환이 경찰이 되고, 싸움을 말렸던 성빈이 건달이 된다는 설정. 이를 두고 "캐릭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의 반대편에 서려고 할 때도 있으니까요.
- 〈패싸움〉: 당구장 싸움 → 현수 사망 → 성빈 수감
- 〈악몽〉: 출소 후 재기 시도 →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실패 → 조직 합류
- 〈현대인〉: 석환, 경찰로서 태훈 검거 → 성빈과의 재충돌 예고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상환의 폭력 세계 입문 → 석환과 성빈의 최후 충돌 → 비극적 결말
이 네 단계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이 선명해집니다. 폭력은 발생한 곳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 성빈의 선택은 석환을 바꿨고, 석환의 삶은 동생 상환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저는 이 구조를 보면서 인과율(Causality)이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인과율이란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또 다른 결과의 씨앗이 된다는 원리입니다. 영화 전체가 그 원리를 냉정하게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폭력의 악순환 — 이 영화가 느와르 장르로 기억되는 이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느와르(Film Noir) 장르로 분류됩니다. 느와르란 도덕적으로 회색 지대에 있는 인물들이 출구 없는 운명 속에서 몰락해가는 이야기를 어둡고 사실적인 방식으로 그려내는 영화 양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착한 사람이 나쁜 일을 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잘못을 안고 살아가다 파국을 맞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이건 단순한 조폭 영화가 아니다"라고 느낀 순간이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 작품을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공식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 초저예산 독립영화가 극장 개봉까지 이어진 사례로도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지금은 블록버스터 액션으로 잘 알려진 류승완 감독의 출발점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가 그 원형에 해당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상환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상환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성빈이라는 인물을 동경했고, 그 세계가 강해 보였을 뿐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저는 제 주변의 비슷한 상황들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누군가를 우상화하다가 그 사람의 세계를 통째로 따라가게 되는 일. 현실에서도 드물지 않은 일이니까요.
결국 석환은 성빈을 죽이고, 상환도 조직 싸움에 휘말려 목숨을 잃습니다. 어떤 분들은 "결말이 너무 막막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데, 저는 이 결말이 오히려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적인 구원이나 갱생 없이 폭력의 연쇄가 그냥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는 모습. 불편하지만 외면하기 어려운 진실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입니다. 당시 사회적 양극화와 청년층의 불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관련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특별한 배경도, 안정적인 미래도 없이 그저 몸으로 버티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당시 시대 분위기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화면, 큰 규모가 아닌 좁은 공간들, 당구장과 카센터와 골목. 이 영화의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된 공간과 인물과 사물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세련됨과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그 투박함이 오히려 인물들의 감정을 날것으로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겁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도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석환과 성빈과 상환의 얼굴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국내 일부 VOD 플랫폼이나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관람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서비스 상황은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직접 검색해서 확인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Q. 류승완 감독의 첫 번째 영화가 맞나요?
A. 네, 한국영상자료원이 공식적으로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단편 연출 경험은 있었지만, 극장 개봉 장편으로서는 이 작품이 출발점입니다. 이후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 대작전》으로 이어지는 류승완 스타일의 원형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Q. 영화가 옴니버스 구조인데, 이야기가 따로따로 느껴지지는 않나요?
A. 저도 처음에는 그 점을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앞 에피소드의 사건이 다음 에피소드의 원인이 되는 구조라서 생각보다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물들이 달라지는 모습이 한 편의 장편보다 더 명확하게 보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Q. 폭력 장면이 많은가요? 잔인한 편인가요?
A. 청소년관람불가 등급답게 신체적 충돌 장면이 꽤 있고, 거칠게 묘사됩니다. 다만 자극을 위한 과장보다는 결과의 무게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편이라, 단순히 액션이 화려한 영화를 기대한다면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결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기 전에는 제목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친 사람들의 거친 이야기.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목을 다시 읽었을 때, 그게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죽거나 나쁘게 살거나. 그 두 가지 사이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영화는 세 사람의 삶으로 보여줍니다.
완성도만 따지자면 지금 기준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본 뒤 화가 나는 순간마다 한 박자 쉬어보려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멀리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고 나서는, 쉽게 무시하기 어려워졌거든요. 류승완 감독의 초기 작품이 궁금하거나, 한국 느와르의 계보를 따라가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