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개봉한 《우아한 세계》는 조직폭력배 중간 보스가 주인공인 느와르 영화임에도 흥행 성적보다 "40대 가장의 애환을 담은 작품"으로 더 오래 회자됩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비웃었습니다. 조폭 영화에 '우아'라는 단어가 붙다니, 제목만으로도 역설이 완성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2000년대 한국의 사회적 배경과 이 영화가 태어난 맥락《우아한 세계》가 만들어진 2000년대 중반은 이른바 '가장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여기서 가장 이데올로기란, 남성 가장이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책임지는 것이 곧 사랑의 증명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말합니다. 좋은 집, 안정적인 수입, 자녀 교육—이 세 가지를 갖추면 좋은 아버지라는 등식이 암묵적으로 통용됐습니다.강인구라는 캐릭터는 ..
서울 강남을 지나다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높은 아파트, 정비된 도로, 즐비한 상업시설. 저는 그게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남 1970》을 보고 나서 그 무심함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개발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 어떤 사람들의 욕망과 선택이 쌓여 있었는지를, 이 영화가 꽤 날카롭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배경 — 개발이 시작되던 강남, 그리고 그 땅의 의미《강남 1970》의 배경은 1970년대 서울입니다. 지금의 강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강남 지역은 도시계획에 의해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던 시기였고, 서울의 급격한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행정 당국이 강북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을 밀어붙이던 때였습..
《부당거래》는 2010년 제32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경찰과 검사가 싸우는 범죄 영화'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다시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얼마나 불편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해부하고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권력 구조 — 누가 범인인지보다 구조가 더 무섭다일반적으로 범죄 스릴러 장르라고 하면 선명한 악당이 있고, 그것을 쫓는 영웅이 있는 구조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부당거래》는 그 공식을 처음부터 거부합니다. 제가 다시 보면서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영화는 연쇄 살인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자 경찰 조직 상층부는 이른바 '가짜 범인 만들기'라는 선택을 내립니다. 수사의 목적이 진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