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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는 1920년, 서대문형무소 수감 중 순국했습니다. 당시 나이 열여덟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영화 《항거》를 보고 나서야 저는 그 숫자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역사책에서는 이름과 날짜로 기억되는 사람이, 화면 안에서는 두려워하고 고통받는 한 명의 사람으로 살아 있었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목소리를 잃지 않은 사람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 감독 조민호, 주연 고아성)는 3·1운동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의 옥중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제가 보기 전에 기대했던 건 만세운동의 현장 재현이었는데, 실제로 영화가 카메라를 들이댄 곳은 오히려 좁고 어두운 감옥 안이었습니다. 그게 처음엔 낯설었는데, 보다 보니 그 선택이 정확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면은 수감자들이 좁은 옥사 안에서 함께 만세를 외치는 대목입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행동할 자유도 없는 상황에서 목소리 하나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보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입을 열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들었거든요.
여기서 짚고 싶은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양심범(conscience prisoner)입니다. 양심범이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 정체성을 이유로 구금된 사람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갇힌 사람'입니다. 유관순을 비롯한 3·1운동 참여자 상당수가 바로 이 양심범에 해당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이 개념을 중심으로 인권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당시 조선의 상황도 이 기준으로 보면 국제 인권 기준상 명백한 탄압 사례입니다(출처: Amnesty International).
영화는 유관순을 처음부터 끝까지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위인 서사를 다룬 영화가 주인공을 완벽하게 묘사할수록 오히려 관객과의 거리가 벌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항거》는 그 반대였습니다. 유관순이 고통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지쳐가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그 용기의 무게를 더 크게 느꼈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저항(resistance)의 방식도 주목할 만합니다. 저항이란 외부의 억압에 맞서 자신의 신념이나 정체성을 지키는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총을 들거나 거리로 나가는 것만이 저항이 아니라, 감옥 안에서 이름을 기억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저항입니다. 영화 제목인 '항거(抗拒)' 자체가 그 뜻을 담고 있고,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단어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 영화는 3·1운동 현장이 아닌 서대문형무소 옥중 생활에 집중한다
- 유관순을 완벽한 영웅이 아닌 두려움을 가진 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 양심범 개념으로 보면 당시 수감자들은 국제 인권 기준상 명백한 탄압 피해자다
- 저항은 거창한 행동만이 아니라 신념을 지키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자유는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전국에서 동시에 일어난 비폭력 독립 만세운동입니다.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 한반도는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 아래 놓여 있었고, 이 시기에 조선인들은 언어와 문화,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를 조직적으로 박탈당했습니다. 3·1운동은 그 억압에 맞선 전국적 저항의 첫 번째 대규모 발화점이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전국적으로 약 200만 명이 참여했고, 체포된 인원만 해도 수만 명에 이릅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저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 숫자를 시험 문제로만 접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그 숫자들을 '사람'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감옥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여성 수감자들, 각자 다른 이유와 배경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직접 체험한 건 아니지만 그 시대의 밀도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시민적 자유(civil libert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시민적 자유란 국가 권력의 부당한 간섭 없이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이동하고,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본 권리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이 권리가, 불과 한 세기 전에는 말 한마디로 감옥에 끌려갈 수 있었던 시대에 목숨을 걸어야 쟁취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이 개념을 교과서 문장이 아닌 실감으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제가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건, 유관순이 특별히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제 경험상 용기라는 단어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이 영화는 그 전제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용기의 실체라는 걸 화면으로 처음 실감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평범한 하루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하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엔 실제로 그랬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원하는 공부와 일을 선택할 수 있고, 가족과 아무 일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했던 삶이었다는 사실을 영화가 조용히 상기시켜줬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얻기 어려운 것인지, 그 감각이 영화를 보고 며칠간 남아 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항거》, 역사 지식 없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영화가 3·1운동이나 일제강점기를 사전 지식으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고, 감옥 안 한 사람의 일상과 감정을 따라가는 구조라서 역사보다 인물에 집중하게 됩니다. 오히려 영화를 본 뒤에 그 시대 배경이 더 궁금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영화 《항거》가 실화 기반인가요, 각색이 많은가요?
A. 유관순의 서대문형무소 수감과 옥중 만세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감옥 안 인물들의 대화와 세부 장면은 영화적 재구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부분은 당시 상황과 맥락을 바탕으로 재현했기 때문에, 핵심 사실은 실화이지만 세밀한 장면들은 창작입니다.
Q. 고아성 배우의 연기가 실제로 어떤가요?
A.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고아성 배우의 연기였습니다. 유관순을 비장하게만 그리지 않고, 지치고 무너지는 순간도 솔직하게 담아냈습니다. 그 덕분에 인물이 훨씬 실제처럼 느껴졌고, 2019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도 납득이 됐습니다.
Q. 아이들이나 청소년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인가요?
A.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영화입니다. 수감과 고문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직접적인 폭력 묘사보다는 인물의 감정과 신념에 집중하기 때문에, 중학생 이상이라면 함께 보고 대화 나누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3·1절이나 광복절 전후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론
《항거》는 보고 나서 금방 잊히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제 경우엔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며칠간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오히려 유관순의 선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줬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날짜와 이름을 외우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어떤 두려움과 선택이 있었을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는 것, 그게 과거를 현재와 연결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항거》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3·1절이나 광복절을 앞두고 한 번 시간을 내보시길 권합니다. 거창한 준비 없이 그냥 틀어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