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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뉴스를 볼 때마다 저는 이상하게 후보보다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이 더 궁금했습니다. 저 사람은 어떤 전략을 짰을까, 저 연설은 누가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죠. 영화 《킹메이커》를 보게 된 것도 그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2022년 개봉한 이 작품은 변성현 감독이 연출하고 설경구·이선균이 주연을 맡았는데, 정치인보다 그를 만든 사람의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는 점에서 보기 전부터 달랐습니다.

1960~70년대, 선거가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대
영화의 배경은 1960~70년대 한국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선거는 비교적 익숙한 정치 과정이지만, 영화 속 시대는 달랐습니다.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고, 정치적 발언 하나가 생사를 가르기도 했습니다.
《킹메이커》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 엄창록을 모티브로 삼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실제 역사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정치판의 공기와 긴장감을 빌려 왔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영화 속 정치인 김운범(설경구)은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현실의 선거판에서는 번번이 벽에 부딪힙니다.
그 앞에 나타난 사람이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입니다. 여기서 '선거 전략가'란 단순히 선거를 도와주는 참모가 아니라, 유권자 심리를 분석하고 여론 형성 방향을 설계하며 상대 후보의 취약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의미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서창대가 하는 일이 지금 시대의 선거 컨설턴트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선거 환경을 생각하면 서창대가 왜 그렇게 치밀하게 움직여야 했는지가 이해됩니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지 않는 무대에서 정당한 방법만으로는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이 그를 만들었으니까요. 출처: 한국영상자료원(KMDb)에 따르면 《킹메이커》는 2022년 개봉 당시 정치 드라마 장르로 분류되었으며, 1960~70년대 선거 문화를 담은 몇 안 되는 상업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서창대의 선거 전략, 어디까지 정당한가
서창대가 구사하는 방법론의 핵심은 '프레이밍(Framing)'입니다. 프레이밍이란 같은 사실이라도 어떤 맥락과 언어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판단이 달라지는 심리적 효과를 이용해 메시지를 설계하는 기법입니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개념 중 하나입니다.
그는 상대 후보의 약점을 분석하고, 유권자가 어떤 감정적 신호에 반응하는지 계산하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판세를 뒤집습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이건 영리하다"는 생각과 "이건 좀 불편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두 감정이 동시에 드는 영화가 얼마나 됩니까. 그 점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은 다릅니다.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이겁니다. 좋은 목적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서창대를 단순히 '나쁜 책략가'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판단이 조금 단순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김운범의 정치적 이상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고, 그 믿음이 그의 과감한 전략을 정당화하는 내적 논리가 되었으니까요.
서창대가 사용하는 전략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권자 심리 분석: 지역별·계층별 정서 차이를 읽고 맞춤형 메시지를 설계합니다.
-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 유권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지를 먼저 설정합니다. 어젠다 세팅이란 미디어와 선거 캠프가 특정 이슈를 부각해 여론의 우선순위를 조작하는 기법입니다.
- 상대 후보 네거티브 전략: 상대의 약점을 공략해 지지율을 분산시킵니다.
- 후보 이미지 포지셔닝: 김운범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하는지를 전략적으로 구성합니다.
문제는 이 방법들이 효과적일수록 김운범이 처음 지키려 했던 원칙과 점점 멀어진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이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었습니다. 단순한 참모 이야기가 아니라 신뢰와 신념의 균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킹메이커》는 개봉 당시 정치적 묘사의 현실성과 인물 간 심리적 갈등 묘사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림자가 빛을 만들 때, 무엇을 잃는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김운범의 자택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서창대는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됩니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선거 전략 이야기에서 신뢰의 붕괴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저는 이 지점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잘 쓰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과정을 화려한 장면 없이, 표정과 대사 몇 마디로 충분히 전달하니까요. 제 경험상 이런 장면은 쓰는 사람이 관계의 심리를 정말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서창대는 일종의 '킹메이커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킹메이커 딜레마란 자신은 결코 왕이 될 수 없으면서 왕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소모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김운범을 기억하지만 그 성공을 설계한 서창대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그림자에 머물러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점점 균형을 잃어갑니다.
이것이 저에게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서로에게 가장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과정. 화려한 선거 장면보다 그 침묵의 균열이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 스스로에게도 비슷한 질문이 생겼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할 때, 처음에는 분명 좋은 의도로 시작했는데 결과를 빨리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조금씩 원래의 원칙을 내려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타협하다 보면 처음에 무엇을 위해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서창대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 어딘가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킹메이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 참모 엄창록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다만 인물과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 분위기를 빌려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Q. 서창대가 나쁜 사람인가요, 아닌가요?
A. 단순히 나쁘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판단이 영화의 절반만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김운범의 정치적 이상을 진심으로 믿고 움직인 인물입니다. 목적은 순수했지만 수단이 과감했던 사람으로, 영화는 그 둘 중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Q. 정치에 관심 없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충분히 가능합니다. 선거나 정치 지식이 없어도 두 사람이 서로를 필요로 하다가 점점 믿지 못하게 되는 관계의 변화 자체가 흡입력이 있습니다. 정치 영화라기보다 사람 사이의 신뢰와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접근하면 훨씬 더 와닿을 것입니다.
Q. 설경구와 이선균 중 누가 더 인상적이었나요?
A. 저는 이선균이 연기한 서창대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설경구의 김운범이 영화의 축이라면, 이선균의 서창대는 영화에 온도를 주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욕망과 고독이 동시에 느껴지는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결론
《킹메이커》를 다 보고 나서 저에게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누가 옳았는가"가 아니었습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였습니다. 영화는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불편한 질문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남기는 방식으로 끝납니다.
왕을 만드는 사람은 왕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것을 알고, 가장 많은 것을 잃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분은 정치 팬보다 인간관계의 복잡함, 신념과 현실 사이의 선택에 관심 있는 분들입니다. 러닝타임 123분이 짧게 느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