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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동 (청춘 성장, 거석이 형, 방황의 의미)

다온스토리 2026. 9. 21. 00:05

목차


    방황하는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한 적 있으십니까? 저는 《시동》을 보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2019년 개봉한 이 영화는 목적지도 없이 집을 나온 스무 살 택일의 이야기인데, 보고 나서 한동안 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아직 시동조차 제대로 못 건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영화 시동

    청춘의 방황, 실제로는 얼마나 흔한 일인가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택일이 특별히 문제 있는 청년은 아니구나"였습니다. 오히려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비슷한 시기를 보낸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이 감각은 근거가 있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니트(NEET)족 — 여기서 니트족이란 교육도 받지 않고, 취업도 하지 않고, 직업 훈련도 받지 않는 상태의 청년을 뜻합니다 — 규모는 2020년대 초 기준 약 150만 명 수준에 달했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택일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청년이 사회 전체에 걸쳐 이렇게 많다는 뜻이니까요.

    영화 속 택일은 학교에도, 꿈에도, 엄마의 잔소리에도 답을 찾지 못하고 군산행 버스를 탑니다. 이 선택을 충동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일단 벗어나 보는 것 자체가 유일하게 가능한 출발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201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는 청년 실업률이 높고, 진로 불안이 일상화된 시기였습니다. 청소년기 진로 성숙도(career maturity) — 쉽게 말해 자신의 미래 진로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 — 연구들에 따르면, 이 시기 청소년의 상당수가 자신의 적성이나 흥미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졸업을 맞는다고 보고됩니다. 택일은 그 통계 안에 있는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 영화 《시동》 개봉: 2019년 12월 18일, 감독 최정열, 원작 조금산 웹툰
    • 주연: 박정민(택일), 마동석(거석이 형), 정해인(상필), 염정아(정혜)
    • 장르: 코미디·드라마·청춘 성장, 러닝타임 102분, 15세 관람가
    • 배경: 방황하는 청년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당대 한국 사회의 단면
    요약: 택일의 방황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당시 청년 사회의 구조적 불안과 맞닿아 있으며, 통계로도 뒷받침되는 현실입니다.

     

    거석이 형이라는 캐릭터가 실제로 하는 역할

    솔직히 말하면, 저는 마동석이 이 영화에서 이렇게 기능할 줄 몰랐습니다. 단발머리에 화려한 복장을 한 중국집 주방장이라는 설정 자체는 코믹 요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극 안에서 거석이 형이 하는 역할은 그것보다 훨씬 정교합니다.

    서사 이론에서 말하는 멘토 원형(mentor archetype) —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자극이나 환경을 제공하는 인물 유형을 가리킵니다 — 에 거석이 형을 그대로 대입하면 꽤 잘 맞습니다. 다만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거석이 형이 인생 강의를 늘어놓는 대신 그냥 같이 살고 같이 일하는 방식으로 택일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데, 거석이 형이 말로 택일을 가르치는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택일은 변합니다.

    이건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 개념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사회적 학습이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자신의 행동 양식을 바꿔가는 학습 방식으로, 직접 교육보다 일상적 접촉에서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석이 형과 택일의 관계가 정확히 그렇습니다.

    친구 상필의 선택도 이 맥락에서 비교하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상필은 빠른 경제적 독립을 원하며 사채업에 뛰어들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문제입니다. 돈을 버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같은 과정이 아닙니다. 상필은 경제적 자립을 시도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인물을 나란히 놓고 보면, 영화가 "어른이 된다는 것"을 단순히 독립이나 수입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게 읽힙니다.

    요약: 거석이 형은 말이 아닌 일상적 접촉으로 택일을 변화시키는 사회적 학습의 실제 모델이며, 상필과의 대비는 성장의 의미를 더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시동'이라는 제목이 말하는 것, 그리고 제가 가져간 것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목을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단어라고 봤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자동차에서 시동(ignition)이란 — 점화 장치에 전류를 흘려 엔진 내부의 연소를 시작하는 동작으로,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위한 물리적 전제 조건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 목적지 도착과는 전혀 다른 단계입니다. 시동이 걸렸다고 해서 어디에 도착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됐다는 뜻입니다.

    택일의 이야기가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완성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멈춰 있던 사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저 역시 한동안 "지금 나는 잘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못 찾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건 방향이 없었던 것보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이었습니다. 《시동》은 그 압박에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합니다. 도착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멈춰 있던 엔진이 다시 돌아가고 있느냐가 먼저라고요.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두 번 봤는데, 두 번째에는 택일보다 거석이 형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겉으로는 강하고 괴팍해 보이지만 그 안에 자신의 사연과 상처를 가진 사람. 처음 만났을 때 보이는 모습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자주 실수를 만들어낸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요약: '시동'은 완성된 출발이 아니라 멈춰 있던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의미하며, 영화는 도착보다 그 첫 움직임 자체에 의미를 둡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시동》은 원작 웹툰과 많이 다른가요?

    A. 기본 설정과 주요 인물 구성은 조금산 작가의 원작 웹툰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영화화 과정에서 서사 압축이 이루어져 일부 에피소드는 생략되거나 각색되었습니다. 웹툰 특유의 감성을 먼저 접한 독자라면 영화의 호흡이 조금 빠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마동석이 연기한 거석이 형 캐릭터가 코믹 역할인가요, 진지한 역할인가요?

    A. 두 가지를 동시에 합니다. 외모와 행동에서 오는 코믹함이 분명히 있지만, 극 안에서 택일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처럼 보이다가 점점 다른 층위가 드러납니다. 이 이중성이 마동석 배우의 기존 이미지와 맞물려 꽤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Q. 청소년도 볼 수 있는 영화인가요?

    A. 공식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청춘의 방황과 가족 갈등, 사회 현실을 다루는 내용이 중심입니다. 오히려 진로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10대 후반 청소년에게 공감대를 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Q. 주인공 상필은 왜 사채업을 선택하나요?

    A. 상필은 할머니를 부양해야 한다는 현실적 압박 속에서 빠른 수입을 원합니다. 그 선택이 결국 자신을 더 위험한 상황으로 끌고 가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경제적 독립과 진짜 성장이 같은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택일과 대비되는 캐릭터로 설계된 인물입니다.

     

    결론

    《시동》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처음엔 가볍게 볼 코미디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보고 나서 "나는 지금 내 인생에 제대로 시동을 걸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며칠 동안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방황하는 청춘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이 영화가 조금 다른 이유는 성공이나 도착을 목표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멈춰 있던 사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시선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꽤 조용한 위로가 됩니다. 아직 방향을 못 찾았더라도 일단 엔진을 켜는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다는 말을 이 영화는 조용히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