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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미리 겁을 먹는 편입니다. '또 무겁고 비장하게 끝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거든요. 그래서 《박열》을 선택할 때도 사실 조금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법정이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 가장 강한 무기를 쥘 수 있다는 걸 이 영화에서 처음 실감했습니다.

법정 장면이 이렇게 긴장될 줄 몰랐습니다 — 박열의 재판과 아나키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후반부의 재판 장면에서 저는 자꾸 자세를 고쳐 앉게 됐습니다. 법정이라는 공간이 그렇게 팽팽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거든요.
박열은 아나키즘(Anarchism) 사상을 가진 인물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아나키즘이란 국가 권력과 강제적 지배 자체를 거부하는 사상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일본 제국의 지배 구조 전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세계관입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일본 법정 한복판에 세워졌으니, 그 긴장감이 얼마나 컸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가 결성한 불령사(不逞社)는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항일운동 단체였습니다. '불령(不逞)'이란 말 자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제멋대로다'라는 뜻으로, 일본 당국이 조선인들을 비하하며 부르던 표현이었습니다. 박열은 그 단어를 오히려 자신의 이름으로 삼아 버렸습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 이후 일본 사회에는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습니다. 관동대지진이란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역을 강타한 대규모 지진으로, 엄청난 사상자와 사회 혼란을 일으킨 재난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 혼란 속에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덮기 위해 박열을 새로운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박열은 그 의도를 꿰뚫어 보고, 오히려 일부러 황태자 암살 계획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정면 돌파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강하게 느낀 건 '두려움과 용기는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열이 두려움이 없었던 게 아니라, 두려움보다 지키고 싶은 것이 더 컸던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았습니다. 이제훈은 그 눈빛을 굉장히 밀도 있게 표현했는데, 촬영 기간 내내 체중을 크게 줄였다는 이야기가 단순한 헌신 이상의 무게로 느껴졌습니다(출처: 연합뉴스).
- 아나키즘: 국가 권력·강제 지배를 거부하는 사상. 박열의 행동 원리
- 불령사: 박열이 결성한 항일운동 단체. '불령'이라는 비하 표현을 역으로 전유한 이름
- 관동대지진: 1923년 간토 대재난. 이후 조선인 학살과 박열 사건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배경
- 박열 사건: 황태자 암살 혐의로 기소된 재판. 일본 정부의 의도를 역이용한 저항의 기록
가네코 후미코가 더 오래 남은 이유 — 동지애와 역사의 선택
제가 직접 영화를 봤는데, 솔직히 처음엔 후미코라는 인물이 박열의 '곁에 있는 사람' 정도로 그려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에서 여성 인물이 그렇게 소비되는 경우를 자주 봐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희서가 연기한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는 그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후미코는 박열이 쓴 시에 이끌려 그를 직접 찾아간 인물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사상의 공명으로 관계가 시작된 셈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연인이 아니라 동지애(同志愛), 즉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깊은 연대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낭만적 사랑과 달리, 동지애는 서로의 생존보다 가치를 먼저 선택하는 관계를 가리킵니다. 영화 속 두 사람이 바로 그런 관계였습니다.
후미코는 일본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차별에 정면으로 저항했습니다. 이 대목이 저에게는 영화에서 가장 오래 머문 부분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인물 설정은 역사 영화에서 쉽게 소비되거나 단순화되기 쉬운데, 《박열》은 후미코의 신념을 박열의 그것과 동등하게 다뤘습니다. 최희서가 일본어 대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후미코의 독립적인 성격을 표현했다는 평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실감했습니다(출처: 연합뉴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건 후세 다쓰지라는 일본인 변호사의 존재였습니다. 영화가 일본을 단순히 가해자 집단으로만 그리지 않은 지점입니다. 제국주의에 동조하지 않고 양심적 선택을 한 일본인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선택을 역사가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영화를 보면서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생각이 남았습니다. '역사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했느냐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게 이 영화가 저에게 준 가장 큰 질문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박열 영화, 역사를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관동대지진이나 박열 사건을 전혀 몰라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습니다. 영화 자체가 사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역사적 배경을 조금만 알고 보면 법정 장면의 긴장감이 몇 배로 느껴집니다.
Q. 가네코 후미코는 실존 인물인가요?
A. 실존 인물입니다. 1903년생 일본 여성으로, 박열과 함께 불령사에서 활동하며 박열 사건의 공동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일본인임에도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인물로, 역사 기록에 실제로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Q. 《박열》은 이준익 감독의 다른 영화와 분위기가 다른가요?
A. 《왕의 남자》나 《사도》와 비교하면 분명히 다릅니다. 비장하고 무거운 결말보다는 두 주인공의 당당함과 유머 섞인 저항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어서,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치고는 의외로 보는 내내 숨통이 트이는 편입니다. 저는 이 점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더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Q. 영화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장면이 많이 나오나요?
A. 직접적인 학살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 방식은 아닙니다. 학살의 실상보다는 그것을 은폐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과 박열이 그 상황을 어떻게 역으로 이용하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자극적인 묘사보다 구조적 부조리를 드러내는 방식이라 오히려 더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결론
《박열》을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얼마나 끝까지 버틸 수 있는가.' 일상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자신의 생각을 접습니다. 주변의 눈치를 보거나, 불이익이 두렵거나. 박열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질문이 꽤 오래 남았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저에게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망설이고 있는 분이 있다면, 역사 공부를 하러 간다는 마음보다 '신념을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접근해 보시길 권합니다. 법정 장면에서 자세를 고쳐 앉게 되는 순간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